디지털 카메라

2008. 1. 6. 10:49About Photography

 오늘 조그마한 디지털 카메라를 하나 구입했다. 이름은 Kodak Easyshare Z885 가격은 20만원 정도이며 성능은 지불한 비용 만큼이다. 저가의 저성능 카메라로 '재미있는 사진 생활'을 해보고 싶어 구입했지만 지불비용의 기대치보다 더욱 훌륭했으면 하는 생각에 아쉽기만 하다. 화소수는 700만이라 하는데 (내가 사진과를 졸업할 당시가 EOS 10D가 신제품으로 나올 당시이고 그때엔 온통 화소수에 대한 논쟁으로 사진판이 뜨거울 때라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 기준은 화소수 타령에 멈춰있는 것 같다.) 포토샵으로 열어보면 실망이 짙어지기만 할 뿐즐기자고 산 카메라를 앞에 두고서도 나는 결코 즐겁지 못하다.

 요새 술자리에서 자주하는 푸념이 '사진인생 10년차'라는 말이다. 한국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또 사회라는 곳에서 사진으로 밥을 벌어도 보고 무능한 솜씨를 감춰 볼 요량으로 유학을 하는 등 그러저럭 10년, 사진을 통해 인생을 소비하는 중이지만 카메라라는 것은 언제나 어렵고 낯선 존재이다. 흔히 좋은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입 발린 소리를 하지만, 좋은 카메라는 좋은 사진을 만드는데 확실히 유리하다. 유능한 작가 일수록 가장 확실하고 믿음직한 카메라를 선택하기 마련이며 그들의 오랜 경험이 소위 명품 카메라를 만들고 전통을 이끌어 냈음은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진하는 사람에게 카메라가 소중하지 않다면 또 무엇이 소중할까.

 아마 내가 처음 디지털 카메라를 본것이 교수 연구실에 놓여있는 캐논 D6였던것 같다. 학생들 쓰라고 가져다 놓은 카메라가 교수들의 방을 떠나지 않았으며 롤지를 사용 가능한 최신형 엡손 잉크젯 프린터도 멀리서 구경만 했을 뿐 지금 생각하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교수라는 인간들의 대부분이 교자재가 다 자신의 것인냥 독차지 할 뿐이다. 그런데 교수들이 그럴수 있었던 까닭도 얼마간은 학생들, 우리 자신에게도 있었으니 바로 시대 변화에 대한 무감각과 편견, 고집들이었다. 나 역시 한 때는 필름과 인화지를 버리고서는 진정한 사진을 할 수 없다고 믿었고, 로버트 프랭크가 세계 제일의 작가라고 생각으며, 진정 아름다운 사진이란 오로지 고혹하고 섬세한 흑과 백의 무수한 조합들로만 이루어진다고 주장도 했었다. 코닥이 브라질 생산라인을 가동 중지했을 때도, 코엑스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온통 디지털 장비만으로 부스를 가득 채웠을 때도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Tri-x 몇롤과 어깨에 메인 트라이포드, 둠키 가방 정도가 낭만이었 뿐, 더구나 나 자신은 황선구 교수의 '설득'과 '간청'을 열렬히 또 맹렬히 비난하는 상태였으며 필립 퍼키스를 신으로 모시며 살고 있었다.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로 부질없는 소비적 담론으로 사진의 전반기를 망쳐버렸다면. 필름과 디지털, 어느 것이 보다 예술적이냐 하는 멍청한 논의는 사진의 가장 가까운 과거들을 좀 먹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흑백 사진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진이 디지털의 영역안에서 훌륭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여겨진다. 나 자신의 편협한 특수성에 기인하는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가벼운' 느낌을 제외하고는 나 역시 모든 칼라 작업에는 디지털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인화한 사진을 찢기는 어려워도 폴더 안의 사진은  순식간에 삭제 되어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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